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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19 13:35
단편소설 서기골 로반(1) 김정애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963  

   

 단편소설 서기골 로반

                                            김정애

 

꽁꽁 언 눈 덮인 산정에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길에 수북이 쌓인 눈에 발자국을 찍으며 들어선 골짜기는 마치 아무도 없는 미지의 세계 같다.

두 사람은 사방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다. 빠드득 빠드득 발밑 눈 밟히는 소리에 놀랐는지 길옆 나뭇가지에서 산새 한 마리가 짹, 하고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골짜기의 끝자락에 거의 다다를 무렵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개 짖는 소리예요. 우리가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아요.”

순옥이가 반가운 목소리로 탄성을 지른다.

그러게 내가 뭐랬소. 길이 있으면 반드시 인가가 있게 마련이지. 당신은 그저 이 남편말만 푹 믿으면 되오.”

 

덕만은 아내의 말에 응수하며 어깨를 으쓱한다. 완만한 경사의 골짜기막바지에 제법 너른 부지를 안은 덩실한 집 한 채가 나타났다. 지붕위엔 겨우내 내린 흰 눈이 두텁게 얹혀있다.

거 누구요?”

 

웬 남자의 목소리에 이어 말 같은 개 여러 마리가 순옥이네 쪽으로 냅다 달려온다.

, , 낯선 손님을 보자 쏜살같이 내닫는 개를 꾸짖으며 웬 남자가 허둥지둥 쫓아왔다. 그 사람은 반갑게도 조선말을 한다. 눈길에 서서 뭘 하고 있었는지 추위에 빨갛게 곱아든 손에 헝클어진 실타래가 쥐어져 있었다. 개를 쫓고 나서 그 사람은 길에 가로놓인 실오리를 들어 올리며 어서 지나가라고 턱짓한다. 두 사람이 거길 지나치자 남자는 길을 가로지른 실오리 끝을 가느다란 풀대에 매어놓고 앞장서 걸었다.

 

여긴 어떻게 왔소?”

, 우리는 북조선에서 건너온 사람들이오. 어디 안전하게 있을만한 곳이 없나 해서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소.”

그렇소? 마침 잘 왔소. 오늘 로반(사장)이 올라왔는데 어서 들어가서 물어 보구레

남자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순옥은 로반이란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다 그만 입을 다물었다.

 

굴뚝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한풀 사그라져 어둠이 짙어가는 하늘가로 흩어졌다.

사방에 빙 둘러서서 그냥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을 피해 순옥은 덕만의 뒤에 바싹 붙어 섰다.

워리, 워리, 왜 이리 소란스러운 거야. 지개!”

 

마당에 들어서자 반지르르한 머리채를 정수리까지 바짝 틀어 올린 젊은 여자가 앙칼지게 소리치며 문밖에 나온다. 살집이 희고 통통한 인상의 여자가 놀란 눈빛으로 낯선 손님을 재빨리 훑어보더니 곧 신경질이 배인 미간을 펴며 상냥한 웃음을 지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북조선에서 왔습니다.”

덕만이가 큰 허우대를 굽석 숙이며 여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 그래요? 반가워요. 난 여기 로반이에요. 그러잖아도 일꾼이 필요했는데 어서 들어와요.”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을 한다.

습한 열기가 가득찬 방에 들어서자 로반은 방 한쪽에 말아놓은 이불을 벗긴다. 그 속에서 뼈에 가죽만 남은 남자가 퀭한 눈으로 여자를 올려다본다.

여보, 북조선에서 온 사람들이래요.”

 

순옥은 하마터면 악, 소리를 칠 뻔 했다. 해골처럼 피골이 상접한 남자가 이불속에 있었다. 로반은 눈을 껌벅이지 않는다면 분명 시체로 착각하고도 남을 남자를 아무 내색도 않고 일으켜 벽에 기대 앉혀놓고는 자기도 그 옆에 나란히 앉는다. 병색이 짙은 남자의 인상은 손님이고 뭐고 다 귀찮다는 기색이다. 로반이 진작 여보라고 불렀게 망정이지 순옥은 여자보다 이십년도 훨씬 넘게 보이는 남자를 그녀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쯤으로 혼동할 뻔 했다. 멀거니 순옥을 바라보던 남자가 턱을 약간 쳐들어 보이자 로반이 달싹 일어나 선반위의 쟁반을 내렸다. 쟁반에는 알락달락 포장한 사탕과자가 가득 담겨있었다.

 

국경은 언제 넘었어요?”

로반이 쟁반을 내밀며 상냥하게 물었다.

어제 새벽에 넘었습니다.”

두만강은 이제 다 얼어붙은 모양이죠?”

복판이 채 얼지 않아 물에 빠지면서 건넜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로반은 아내의 또래정도로 보였으나 덕만은 그녀에게 깍듯이 예문을 붙였다.

고생했네요. 조선 어디서 떠났어요?”

 

로반은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두만강을 떠올렸는지 으스스 몸을 떨었다.

청진에서 떠났습니다.”

청진이라면.......어디로 넘었는데?”

흘러내린 붉은 머리카락을 귓바퀴로 쓸어 넘기는 로반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순옥은 로반의 자상한 친절이 같은 또래에 대한 단순한 동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저기.......그게 어디죠?” 순옥은 오던 길을 더듬으며 덕만을 쳐다보았다.

삼합? 아님 개산툰? 어느 쪽이에요?”

로반의 질문이 이어지자 순옥은 그동안 이 곳에 많은 탈북자들이 다녀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중국인인 로반이 조·중 국경지역을 그리 훤히 꿰뚫을 수 있을까.

강안리 쪽으로 건넜습니다. 함북도 종성과 온성사이......”

 

순옥은 지명을 자세히 말하려다말고 그만 말끝을 얼버무렸다. 북조선 어디라면 제가 알라구?

그런데 여기 서기골은 어떻게 알고....... 누가 알려줬죠?”

로반이 재촉하듯 바짝 다가앉았다.

순옥은 강을 건너 위자구라는 곳에 들렀는데 거기서 만난 조선족 할아버지가 탈북자들이 있는 곳을 약도를 그려서 알려주었고 거길 찾아가던 길에 이 골짜기로 꺾어들었다고 말했다.

 

잘 왔어요. 자기네는 거기보다 여기가 더 안전할 테니까. 그렇죠, 여보?”

여자는 교태어린 코멘소리로 남편에게 물었다. 남자는 위태할 정도의 마른 체격이었지만 눈빛은 어딘가 모르게 살아있었다.

그래. 잘 왔어. 이 주변에서 안전이야 우리 서기골만 할라구. 어서 거처를 정해주고 일하도록 해남자의 목소리가 깡마른 체격만큼이나 메마르게 들렸다.

이어 로반이 서기골의 일과를 쭉 말했다. 놀랍게도 새벽 4시부터 저녁 7시까지의 일과가 빈틈없이 짜여있는데 기본 해야 할 일은 장작패기다. 그것도 사람마다 경운기로 한차 분량이었다.

 

저 여자도 남자들과 똑 같이 패야 합니까?” 덕만의 어성이 약간 높아졌다.

물론이죠. 남자나 여자나 똑 같이 먹고 사는데 예외일 수 없죠. 다른 산창은 아마 여기보다 더 할걸요. 밥과 빨래는 당연히 여자 몫이어서 배로 힘들겠지만 북조선 여자라면 못할 것도 없잖아요. 생활력 강하기로는 웬만한 남자들 찜 쪄 먹을 사람들인데.”

그러면서 로반은 은근슬쩍 덕만의 낯을 살핀다. 남편이 아내의 부족한 몫까지 채울 수 있다고 믿는 모양새다.

알겠습니다. 사람마다 매일 한차씩 패서 팔아야 한다는 거죠?”

 

덕만이 재차 묻자 순간 로반은 아니꼽게 눈초리를 치켜뜨더니 곧 표정을 풀었다.

그래요. 이달에 설명절도 꼈으니 나무판 돈의 일부는 명절음식을 마련하도록 드릴게요. 나니까 그렇지 다른 산창은 어림도 없어요. 탈북자가 일한 삯은 계산은커녕 아예 숙식으로 둥치는데도 많아요.”

 

로반은 서기골에 오길 잘 했다면서 시동생이 현재 이곳 공산당 지부 서기라고 소개했다. 산의 지명도 시동생인 서기가 사놓은 산이어서 서기골로 불리는 것이란다. 서기의 인품과 권력까지 두루 자랑하는 로반의 말에서 순옥은 안전한 곳에 면바로 잘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만이와 순옥이가 거듭 인사하고 일어서려는데 로반이 옆방에 대고 소리쳤다

 

여기 좀 나와 봐요

곧 출입문 여닫는 소리와 함께 아까 길목에서 실타래를 쥐고 있던 남자가 들어섰다.

로반, 날 찾았시오?”

그래요. 조선에서 건너 온 사람들인데 그 방에서 같이 지내도록 해요. 작업동복과 이불도 갖춰주고

로반은 남자를 이곳에서 자신을 대신해 일꾼들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최철귭니다. 잠자리가 좀 비좁겠지만 뭐 그럭저럭 같이 지냅시다. 갑시다.”

옆방에는 탈북자로 보이는 남자가 한명 더 있었다.

한아바이, 인사하오. 물 건너에서 사람이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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